일본 전범, 가해의 역사는 아직 해결돼지 않았다.
분명한 사실은 모든 일본인들의 잘못은 아니다.
너무 일본을 두고 쪽바리라고 칭하는 것은 옳지 않다.
과거도 현재도 일본을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을 가졌던 자들의 잘못이다.
일본 패망후 결국 사형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일본전범들이다.
그러나 현재에도 일본엔 우익세력들이 아직 기세등등하다.
전범을 애국주의자라고 부를수 있을까 ? 라는 주제를 가지고도 일본내에서 논란이다.
"그런 것 분명히 있지. 여자로 태어난 것 자체가 불행이라는 사실을 어렸을 때부터 느꼈으니까."
바쁜 현장 일로 집에 가지 못했던 지난주, 우연찮게 2020년 3월에 방송된 엔에이치케이(NHK)의 다큐멘터리를 봤다. 너무 충격을 받아 일본인 아내에게 꼭 한번 보라고 알려줬다. 그러자 아내는 위의 답변을 보내오면서 마지막에 '우리 딸들은 그런 생각(불행)을 안 했으면 좋겠는데…'라고 말을 흐렸다.
▲ 일본 NHK 다큐멘터리 <묻힌 소리 - 25년의 진실 '피난지의 성폭력'> 중 한 장면. "여자를 붙잡아 어두운 곳으로 끌고 들어가 옷을 벗겼다"라는 자막이 쓰여있다. ⓒ NHK 화면캡처
충격적인 다큐
우리를 충격에 빠지게 만든 다큐멘터리는 <묻힌 소리 - 25년의 진실 '피난지의 성폭력'>이다. 러닝타임은 48분. 주요 내용은 대규모 자연재해로 인해 집을 잃고 공동 피난소로 대피한 사람들 중 여성들이 당해야 했던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다. NPO(비영리조직)와 연구자들이 2019년 한 해 동안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내용이 가감 없이 소개됐다. 다음은 방송에서 다뤄진 피해여성들의 인터뷰다.
"피난소의 리더가 어느 날 '참 안됐다. 타월과 먹을 것을 줄 테니까 밤에 어디어디로 오세요'라고 해서 고마운 마음에 갔더니 성행위를 강요했습니다."(재해로 인해 남편이 희생된 여성)
"이웃 가설주택에 살고 있던 남자가 점점 이상해지더니 여자아이를 강제로 잡아 가설주택 사이 공터로 끌고 가 옷을 벗겼습니다. 주위 가설주택 이웃들이 '젊은 녀석이라 어쩔 수 없지'라며 본체만체 하며 결국 도와주지 않더군요." (20대 여성)
"복수의 남자들에게 폭행당했습니다. 고발하고 싶었지만 나중에 복수 당해서 제가 살해당한다면 바다에 던져져서 쓰나미 때문에 죽은 것처럼 꾸밀 수 있겠다라는 공포감 때문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피난소에서 성폭행을 당한 여성)
▲ 피해 여성의 증언. "일을 크게 만들어 살해당하더라도 그냥 바다에 던져놓고 쓰나미 때문에 죽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있었다." ⓒ NHK 화면캡처
방송은 별다른 영상도 없이 이러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날 것 그대로 전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만들어진 24시간 긴급구조전화 '같이 있어줄게 핫라인 DV/성폭력 상담'에 이와 비슷한 상담내용이 하루 종일 걸려 왔었다는 상담원의 인터뷰도 담겼다.
"전화 상담 창구가 생기자마자 24시간 계속 전화벨이 울렸어요. 반 이상이 성폭력 관련이었는데 건수로 따지면 5만 건 이상 될 겁니다."
그 상담원은 당시의 상담 메모를 취재진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그 안에는 레이프(강간), 극한의 상태, 괴롭다, 무섭다, 슬프다, 누구한테라도 말하고 싶어 등등의 고통스러운 단어들이 나열돼 있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원래 동일본 대지진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 부제의 '25년'이 나타내듯 95년 1월에 발생했던 한신·아와지 대지진(이하, 고베 대지진) 이후 발생한 크고 작은 자연재해로 삶의 터전을 잃고 피난소로 대피해 다른 사람들과 공동으로 생활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그래서 성폭력 등 피해를 입어도 여러 제약들 때문에 차마 큰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여성들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혹자는 왜 피해를 입었는데 바로 말하지 않았느냐고 의문을 품을 수 있다. 하지만 재난소의 상황은 그들의 입을 막았다. 무엇보다 공동피난소를 떠나면 갈 곳이 없다. 집이 이미 떠내려가거나 무너졌기 때문이다. 실제 성폭행 피해를 입은 30대 여성의 증언이다.
"집이 없어졌으니 당분간 거기에서 살아야 하는데 가해자를 고발할 경우 수사기관이 피난소를 찾아오지 않겠어요? 안 그래도 사람들 마음이 흉흉한데 거기 경찰도 오고 그러면 피난소 분위기가 한층 더 악화되지 않겠습니까. 쏟아지는 눈총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 일본 동북지방에 진도 9의 강진이 발생한지 사흘이 지난 2011년 3월 14일 오후 일본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 시의 한 학교에 마련된 피난소가 피난민들로 가득 차 있다. 2011.3.14 ⓒ 연합뉴스
또 하나는 2차 가해이다. NHK 해당기사와 관련된 문서들을 찾아보면 당사자(피해자) 잘못도 크다, 성 피해가 많았다는 보도는 오보, 아예 거론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피해자를 도와주는 것 등의 내용을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베 대지진이 일어났던 25년 전엔 더 심했다고 한다. 인터넷의 경우 2차 가해가 있다 하더라도 크로스체크를 통해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분간할 수 있지만 95년 당시는 팩트체크조차 불가능했다. 오히려 주간지 등 황색언론이 자극적인 기사를 앞 다투어 내보냈다고 한다.
이러한 여성차별 및 성폭력 방조 분위기는 고베대지진으로부터 26년,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지난 몇 년간 일본에서도 전 세계적인 미투운동의 붐에 힘입어 여성들의 고발이 이어졌다.
이토 시오리,
언론 고위직에 강간당해 고발했으나,
형사고발은 기각되고, 민사소송은 승소했다.
일본 미투 운동의 상징이 되었지만, 그녀는 일본을 떠났고
일본 성범죄 미투운동은 하루살이처럼 흐지부지된다.
왜 ? 그럴까 ?
간단하다. 힘있는 놈이 보수,우익,남성우월,가해자 편이기 때문이다.
여성 기자들도 성폭력 피해
우선 지금도 재판이 진행 중인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의 성폭행 고발이다. 이토 시오리는 2014년 미국에서 귀국한 후 비비시(BBC)와 로이터 통신 등에 원고계약 기사를 써 왔다. 그러던 도중 2015년 4월 프리랜서가 아닌 정식 기자 취직을 위한 상담을 받고자 TBS의 워싱턴 지국장 출신이자 정치부 캡으로 근무하고 있던 야마구치 노리유키를 만났다가 술 취한 상태에서 그에게 성폭행 당했고 준강간 혐의로 경찰에 그를 고발했다.
하지만 1년 동안의 조사 끝에, 야마구치에겐 혐의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이 내려졌다. 이후 이토는 민사소송을 통해 330만 엔의 위자료를 받긴 했지만(일부 승소), 야마구치가 명예훼손 등으로 소송을 거는 등 지루한 법정공방이 이어져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됐다고 토로한 바 있다. 실제로 재판기간 동안 이토가 당한 인신공격은 차마 필설로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이다. 지금 이토 시오리는 자신을 향한 모욕과 명예훼손을 고발 중이다.
이토 시오리 강간범, 야마구치 지국장은
아베와도 친분이 있는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4월에는 일본 재무성의 2인자로 불리는 후쿠다 준이치 사무차관이 TV아사히 여성 기자를 성희롱한 사실이 발각됐다. 하지만 녹음테이프가 등장하기 전까지 후쿠다는 기억이 안 난다, 그런 일이 없다고 발뺌했으며 주류 미디어도 거의 다루지 않았다. 후쿠다를 지휘 감독하는 책임자인 아소 다로 재무상은 "본인에게 엄중주의를 했으며 긴장감을 항상 유지하라고 말했다" 정도로 끝내려 했다.
일본 내에도 과거 일본남성들의 성폭행을 고발하는 영화는 있었다.
심지어 여성기자가 소속돼 있던 TV아사히 내부에서는 반기샤(番記者, 해당관청 출입기자)가 뭐 그런 걸로 타 주간지의 취재원이 되냐는 비난과 함께 직장 내 따돌림(power harassment)이 있었다는 사실이 이후 밝혀졌다.
그러자 성희롱 뉴스를 보도한 <주간신초>는 여성기자가 녹음한 후쿠다의 음성파일을 유튜브에 올렸다. 파일 속에 담긴 내용은 "가슴 만져봐도 되냐?" "네 남편은 바람피우는 스타일? 이번에 예산 통과되면 우리도 바람피우자" "호텔갈까?" "손 묶어도 되냐?" 등등 명백한 성희롱 발언들로 이뤄져 있었다. 후쿠다 사무차관은 파일이 공개되자 바로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 재무성 내에 임시로 설치된 조사위원회는 후쿠다의 사직과 더불어 "본인이 충분한 반론, 반증을 제시하지 않았고 사직서를 냈기 때문에 성희롱 행위가 인정된다"며 조사를 급박하게 끝냈다.
문제는 이 대표적인 사건들조차 일반시민들은 잘 모른다는 점이다. 두 사건 모두 언론사가 결부돼 있는 것도 있어 보도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그나마 알려진 대표적인 미투 운동이 이 정도 수준인데, 자연재해 피해지역 피난소의 실태가 제대로 알려질 리가 만무하다.
동일본대지진 10년... 감춰진 사실들
지난 3월 11일은 동일본 대지진 10주기였다. 일본 매스컴은 보수, 진보 가리지 않고 특집방송을 편성해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스가 총리도 당일 오후 2시에 열린 추도식에서 담화를 발표했고, 담화문의 첫 부분은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의 염으로 채워졌다. 그는 후쿠시마 등 재난지역의 부흥은 착착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아사히신문>은 '사람(人)'이라는 짤막한 박스기사를 통해 이와테 현에서 재해지역의 아이들을 돌보는 한국인 스쿨 소셜 워커를 소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팽팽한 긴장감에 가득 찬 한일관계지만 인간의 교류와 아픔을 나누는 것에는 국경이 따로 없음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피난소의 여성들이 직면해 있는 성폭행 위험 등에 대해 다룬 뉴스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미 이 시리즈를 통해 코로나 사태를 맞아 작년 한 해 동안 자살한 사람들 중 여성의 수 및 그 비율이 늘어났다고 말한 바 있다. 참고로 여성 자살자 수의 증가 이유에 대해 저널리스트 시부이 데쓰야 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성들의 직장은 서비스직이 많다. 주로 여행회사, 음식점 등인데 이런 회사들이 코로나 때문에 대량해고를 하고 당연히 여성부터 자른다. 여성은 실업자가 되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당연히 가족들, 특히 남편과 아빠 얼굴을 계속 봐야 하고 가정 내 폭력도 증가한다. 사실 여성들이 아르바이트나 파트타이머로 일하는 건 자신의 경제력을 위한 것도 있지만 집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구도 존재한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니 우울증도 늘어가고 결국 목숨을 잃는 사람도 나온다. 일본은 여전히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사회니까."
매년 3월 11일은 오직 추모만을 위한 날이었다. 하지만 10년이란 세월동안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감추어져 왔던 팩트들도 존재한다. 동일본 대지진도 언젠가는 일본의 역사 속에 기록될 것이다. 몇 십 년 후 역사 교과서에 '동일본 대지진은 불굴의 의지와 공동체의 협력과 양보로 극복해 낸 재난'이라는 긍정적 키워드로만 포장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역사왜곡이 아닐까 싶다.